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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창고

'배우 신영균'이 5백억대 재산을 기부한 이유는?

10월 5일 서울 중구 명보아트홀(구 명보극장) 기자회견장. 검정색 정장 차림에 호쾌한 웃음을 지으며 등장한 한 원로배우에게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주인공은 명보아트홀과 제주 신영영화박물관 등 5백억원대 사재(私財)를 문화예술계를 위해 내놓은 배우 신영균(82) 씨. 선 굵은 카리스마로 1960, 70년대를 풍미한 이 거물급 배우는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재산 기부 배경을 밝혔습니다.


“제 나이도 이제 팔십이 넘었으니 좋은 일을 하고 가야 할 게 아니냐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습니다. 제가 애착을 갖고 있는 재산을 사회에 돌려주게 돼 보람이 큽니다.”


명보극장은 그의 영화 인생이 오롯이 녹아 있는 곳입니다. 충무로 역사의 산 증인이기도 한 이 건물은 그가 수십 년 전 구입한 ‘명보제과’가 성장해 이뤄낸 성과물입니다.


“스카라극장이 헐린 자리에는 오피스텔이 들어섰어요. 명보극장도 팔라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것마저 허물어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여기서 제 대표작인 영화 <빨간 마후라> <연산군>도 개봉했고요. 가족회의에서 아들이 ‘건물을 영원히 남겨 좋은 일에 쓰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해 재단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이번에 기부할 재산은 새로 설립되는 재단에 출연해 영화계 인재를 발굴 육성하는 사업에 사용할 예정입니다. 박종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언론인 출신 김두호 씨, 신 씨의 아들 신언식 한주AMC 회장이 재단의 중심이 돼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어갈 계획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우수한 인재가 많지만, 시장은 좁습니다. 세계시장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많은 인재를 발굴해 그들을 적극 뒷받침해야 합니다. 이번에 만들 재단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되도록, 또 좋은 후배들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그의 기부 소식이 알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2006년 부인 김선희(76) 씨와 금혼식(결혼 50주년)을 맞은 신 씨는 가족과 친지를 초대하는 특별한 행사를 계획했습니다. 하지만 일주일 전 돌연 호텔 예약을 취소하고 한 신문사에 불우이웃돕기 성금 1억원을 쾌척했습니다. ‘화려한 행사를 벌여 돈을 없애는 것보다 여러 사람들이 밥 한 그릇이라도 나누면 좋겠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올해 초에는 아이티 지진 피해 주민 돕기 성금으로 10만 달러를 선뜻 내놓았습니다. 그는 “돈이 다가 아니다. 참 만족스럽고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강조했습니다. 그의 통 큰 결정에는 가족들의 적극적인 성원도 한몫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뜻을 흔쾌히 따라준 가족에게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저는 행복한 사나이입니다. 집사람에게 기부 얘기를 하자 제게 ‘장한 일을 했다’고 격려해줬습니다. 아들은 굉장히 속이 깊고 효자입니다. 딸은 ‘아버지, 멋쟁이’라며 저를 응원했고요. 손녀는 ‘할아버지, 존경해요’라며 기뻐했습니다. 미국에 가 있는 손자, 손녀들에게도 전화가 왔는데 다들 할아버지가 멋지다고 야단이에요.”



 

원로배우가 거액을 기부한다는 소식에 ‘도대체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벌었을까’라는 세간의 궁금증도 커졌습니다. 그는 “김수용 감독이 나만 보면 ‘재벌’이라고 하는데, 돈은 좀 있지만 재벌은 아니다”라고 겸손하게 말했습니다. 그는 현재 제주방송과 SBS의 주주이기도 합니다. ‘빚을 지지 않는 것’이 자수성가형 부자인 그의 경영 원칙이었습니다.


“영화배우라는 직업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부업으로 처음 명보제과를 인수했습니다. 명보제과 수익 외에도 배우 생활로 착실하게 돈을 모으고 검소하게 생활했습니다. 처음 빵집을 운영했던 아내가 고생이 많았지요. 전문적으로 경영을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리한 사업을 벌이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치과의사로, 영화배우로, 사업가로, 국회의원으로 그는 일평생 변신을 거듭하며 살아왔습니다. 이 중 하나를 택하라면 그는 “당연히 영화배우를 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는 1960년 <과부>로 영화계에 데뷔해 20여 년간 <연산군>(1961년) <상록수>(1961년) <빨간 마후라>(1964년) <미워도 다시 한번>(1968년) 등 2백94편의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1978년 김수용 감독의 영화 <화조>는 그가 출연한 마지막 작품. 은막을 떠난 지 30년이 넘었지만, 그는 못 다한 연기에 대한 열정을 간절히 드러냈습니다.


“시나리오를 고르고 있는데, 제게 맞는 작품이 없었어요. 콘텐츠에서 스토리가 중요한데, 요즘 한국 영화를 보면 주로 치고받고 하는 거예요. 좋은 시나리오가 있다면, 죽기 전 꼭 한 작품에 출연하고 싶습니다.” 


<이 글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행하는 위클리공감(2010.10.11)에 실렸습니다. 위클리공감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