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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창고

김광섭, 아기와 더불어

 

아기와 더불어

                                                                        김광섭


꽃은 어디서 나는지 모르고 핀다
아기도 어디서 나는지 모르고 웃는다
아기는 울지만 우는 것도 피는 것이다

걸음마를 타면
장난감과 논다
의식이 생기고 의지가 선다
아빠 엄마도 거역한다

말을 타다가 오토바이를 타다가
세 바퀴 차에 앉았다가
택시를 몰다가
인형을 안고 과자를 먹다가
트럭에 걷어 싣고

나팔을 불고
한참 잊었던 엄마 아빠 곁에 간다
자유다! 버린 듯이 부려 놓는다
하나씩
놓아주고는
무너뜨리고 흩어 버린다
어른들이 배워 준 질서가 허물어진다
장난감들이 해방된다

TV에서 다이빙하면
소파 아래 물이라 만들어 놓고
두 팔을 앞으로
풍덩 뛰려는 순간
어마나 현아 현아 안돼 안돼
이불 위에 보자기를 씌워
봉우리를 만들어 주면
올라가 미끄럼 탄다

용이 폭포 속에 들어가면
용이 되어 같이 들어갔다가 같이 나온다

어른은 잘 해준다는 뜻에서
그 천성과 자연에 간섭한다


아기는 혼자 있지 못한다
아기의 고독은 우는 것이다
아기는 가만있지 못하는 임금이다

아기가 보는 것은
장난감이 가득 찬 세상이다
아장아장 걸어서 임금은 가신다

산 위에 뜬 달도 달란다
고무풍선을 주면 달이 된다
모든 것은 장난감
살아서 숨쉰다

아기는 어른의 세계를 무너뜨린다
상을 찌푸리면
엄마 아빠 할아버지 주책바가지들!

아기는 어른 속에도 있다
그대로 가만 보는 것이 사랑이요 자애(自愛)다

어른은 천사의 상태에서만
아기의 천진(天眞)에 통한다
그때 아기에게 손을 잡혀
밖에 나가면
아기와 같이 하늘로 간다
길이 험한 데 가면
할아버지! 한다
할아버지는 어진 교통순경이 된다
사람과 사람 어느 사이보다도
아기와 할아버지는 제일 가깝다
아기는 어른의 질서보다도
장난감의 무질서 속에 산다
할아버지는 그 여백(餘白) 속에 있다


 

(김광섭·시인, 1905-1977)

아기에 관한 예쁜 시 한편 올려 봅니다.^^